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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단상 - 애프터양, 쥐는 치즈 꿈, 링 원더링, 체리마호

herimo 2022. 7. 13. 00:24

최근에 보았으나 따로 리뷰하지 않을 영화들에 대한 단상 기록

당연히 스포 포함

 

애프터양(코고나다 감독, 2021)

-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대한 오마주가 많음. 양이 릴리 슈슈가 만들어진 방식을 알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레퍼런스이긴 함. 주제곡인 'Glide'도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주제곡을 리메이크—가사와 양의 서사가 잘 어울려서 듣고 있으면 슬프다.

- 미국 영화는 주로 인종을 통해 미래를 그리는 것 같음. 특히 아시아성을 혼종성을 보여주기 위해 재현하든, 애프터양에서처럼 가치를 항변하기 위해 재현하든. 아무튼 미래에도 아시아성은 핍박의 대상인데 라멘은 미래인들의 입맛을 점령한 것 같고? 하지만 잎차는 실패했다든가… 이런 디테일은 좀 재미가 있었음. 뭐 아시안 퀴진의 인기는 지금도 워낙 좋기도 하고… 오히려 이 영화가 미래를 보는 방식에 설득력이 있었는데 굳이 발전할 필요가 없는 것은 고도로 발전되어 있고 미래에는 해결되겠지 싶은 것들은 거의 다 그대로여서.

- 중국에 뿌리라든가 기원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기원이나 유래 따위를 옹호하는 영화는 아님(그렇게 읽는 것은 좀… 너무 평면적으로 읽는 거라는 생각이…). 오히려 기술이 인종의 정치를 어떤 방식으로 몰아갈지에 관한 우화에 가까운 것 같음. 인종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 얘기도 좀 나오고 (클론과의 결혼은 비윤리적인가? 등)

- 안드로이드 '양'의 정지 사유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기억 저장 장치가 꽉 찬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음. 그리고 양의 상냥함은 평등하고 평등한 상냥함이란 때론 잔인한 것임. 그것이 루트 권한이 없어서 생긴 문제이든 아니든 간에…

- 코고나다 감독의 연출과 편집이 정말 빼어남. 서사와 영상을 매개로 했음에도 감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느낌이 듦.


궁지에 몰린 쥐는 치즈를 꿈꾼다(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2020) - BIFAN 2022 관람 

- 만화 원작인데 원작의 주요 설정을 가져오되 감독의 창작이 많은 편

- 감독도 유명하고 원작도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퀴어 영화를 많이 연출하지 않은 감독들이 퀴어를 재현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음. 종종 너무 많이 설명하려고 한다든가… '퀴어'가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아무튼 원작을 다시 체크하진 않았지만 이마가세(나리타 료 분)가 쿄쨩(오토모 쿄이치, 오쿠라 타다요시 분)에게 저지르는 폭력이 좀 애매하게 그려져 있음. 원작은 좀 더 능동적으로 폭력적인데 영화에서는 그가 궁지에 몰리길 기다리는 편에 가까움.

- 오토모는 대학 시절의 여친이었던 나츠키의 표현처럼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쥐' 같은 사람으로,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 다 막지 못하는 게 특징임. 오토모는 그런 식의 열정적인 사랑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아예 그러한 세상 자체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짐. 이런 오토모가 어떻게 이마가세를 선택하게 되는지까지의 여정이 전반부 정도라면(이게 영화에서 2/3 정도), 이마가세를 선택하는 게 결국 그를 놓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진정한 '궁지'에 몰리는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대충 끝에서 1/3 정도?)를 이룸.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 장 콕토 감독의 '오르페'는 사랑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대상을 잃게 되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은유로 삽입되어 있음.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자기가 정말로 먹고 싶은 것('치즈')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된다는 얘기.

- 오토모의 캐릭터와 서사가 매우 공 들여서 축조되는 것과 달리 이마가세의 캐릭터는 원작에 비해 좀 더 평면적이지 않나 싶음. 그의 광기나 캐릭터가 제대로 표현이 안 된 점이 있고.... 아무래도 실사로 만들면서 가스라이팅이 애정의 시작이 되는 루트(원작의 이마가세가 행한 짓)를 막았다는 인상이 있음. 아마도 원작이 2부로 구성되어 1부가 쿄이치를, 2부가 이마가세의 결핍과 뒤틀림을 각각 보는 데 비해 영화는 오토모의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벌어진 일이랄까.

- 오토모 주변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야기, 오토모의 멘털리티, 이마가세의 질투가 잘 어울리지 않고 좀 맥이 끊김. 편집에서도 뜬금 없는 블랙아웃이 자주 삽입돼 있는 걸 보면 이런 식의 불연속성은 좀 의도한 것 같음. 오토모의 자아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이런 불연속성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긴 한데….

- 아무튼 원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기괴한 사랑을 그대로 그리는 대신,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대상을 버림으로써 퀴어해지는 순간을 잘 전달한 것 같기는 함. 다만 그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퀴어 사랑이 최후의 '궁지'나 마지막 사랑의 표상이 되어야 할 당위가 있을까? 2020년에…?


링 원더링(가네코 마사카즈 감독, 2021) - BIFAN 2022 관람

- 이야기가 세 층위를 이루고 있는데 이 세 개의 이야기를 꿰뚫는 주제가 '폭력'임. 영화는 결과적으로 폭력의 사슬을 끊어야 된다는 주제 의식을 매우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함… (아님 말구)

- 첫 번째 장면에서 주인공 소스케(가사마츠 쇼)는 멸종한 일본늑대를 그리려고 고군분투 하다가 한 아이를 만남. 나중에 밝혀지는 바로는 일본늑대를 그리기 위해 자료 수집?을 한다고는 하는데 왜 거기에 꽂혔는지는 안 나옴. 그냥 멸종되어서 한 번 그려보겠다고 한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 그 다음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동물의 머리 뼈를 발굴하고 그게 일본늑대의 두상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냄.

- 그래서 건설현장에 뭐가 더 있는지 몰라서 가서 더 파보다가 '시로'라는 강아지를 찾는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만나게 됨. 시로는 지난 주에 들린 '펑' 하는 소리에 놀라서 없어졌다고 함. 어쩌다 보니 그 소녀가 발목을 삐는 데 일조(?)한 죄로 그녀를 업고 시로를 같이 찾아주려고 동네방네 돌아다니가다 (보다 보면 대충 2차 세계대전 쯤으로 타임 슬립을 했다는 증거가 꽤 여러 가지 나옴) 그녀의 아버지가 한다는 사진관 겸 집에 가서 저녁도 얻어 먹고 그림도 그려주고 옴. 소녀와 헤어지면서 뭔가 영혼의 교류 같은 걸 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겨울인데 웬 불꽃놀이를 하는 것 봄.

- 다음날이 밝아서 그 사진관을 다시 찾아가니 소스케가 만났던 가족들은 전쟁 중 폭격으로 인해 사망했고 그 당시에 집에 없었던 소녀의 남동생 '코타'만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됨. 근데 이 코타가 첫 번째 장면에서 만났던 꼬맹이임. 소스케는 코타에게 시로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 뼈와 목줄(이날 건설현장에서 찾음)을 돌려주고 답례로 사진첩을 받음.

- 여러 가지로 삘 받은 소스케는 자기 만화에서 원래 늑대 사냥을 그리려고 했었는데 결말을 수정해서 늑대를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함.

- 영화의 마지막에서 소스케는 코타가 찍었다는 일본 늑대 사진이 찍힌 장소를 다시 찾아감. 보이는 건 밀밭뿐이어서 역시 일본늑대는 멸종했잖아. 하면서 눕는데 그가 누워 있는 밀밭이 위에서 보면 늑대의 모양이고 밀밭으로 이뤄진 거대한 늑대의 눈이 뜨고 감기기를 반복하면서 영화는 끝남.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강아지인 줄 알았던 시로는 결국 일본늑대였던 것이다… 라는 것도 있으므로 아무튼 코타는 최후의 일본늑대를 만나고 키웠던 것임. 마지막 늑대의 형상을 한 밀밭은 시로의 영혼이 잠깐 대지에 머무는 마지막 순간 같은 것일 수도 있겠죠. 이 해석 역시 아님 말고임.)

- 소스케의 현실, 소스케의 타임슬립(약 70년 전), 소스케가 그리는 만화 모두에서 '총성' 혹은 '포성'은 무언가를 잃게 함. 소스케가 그리는 만화에서는 총포를 쓰는 수렵으로 일본늑대를 포함한 산 속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고, 추정상 최후의 일본 늑대인 유사 강아지 시로도 포성을 듣고 놀라서 달아남, 사진관 가족들은 포격에 불 타 없어지고 등등. 반면 소스케의 현실에서 폭약은 불꽃놀이로서 이러한 상실을 달래기 위한 의례의 한 요소임.

- 현실, 과거, 환상 사이의 이행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연결 (편집상으로도, 서사 내에서도) 되어 있어서 영화의 표제인 '판타스틱'과 잘 어울리는 면이 있었음. 제법 만족스러운 관람.

- 링 원더링이라는 제목처럼 시간과 사건은 원환 구조를 이루고 있고 둥그런 사건을 배회(wandering)하는 이야기이기도 함.

 

체리마호 더 무비(카자마 히로키 감독, 2022)

- 원작 만화가 있고, 같은 감독의 8부작 드라마 및 스핀오프(츠타야 독점 공개)가 나와 있음.

- 원작의 아다치와 영상화(드라마+영화) 버전의 아다치는 성격이 꽤 많이 다름. 원작의 아다치는 소시민으로서의 자신감 부족뿐만 아니라 약간의 이기심도 있고 세태에 물들어 있는 것에 반해 영상판의 아다치는 훨씬 더 순수한 도짓코 속성 캐릭터로 각색되었음. 비슷하게 영상판의 쿠로사와보다 원작의 쿠로사와가 좀 더 관음증적이고 계략공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음.

-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짐. 첫 번째 파트는 마법을 어떻게 잃게 되었는가—곧 두 사람은 언제 어떻게 섹스를 했는가에 대한 것임. 원작에서는 마법을 잃고 전근을 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판에서는 마법을 잃는 이야기와 전근에 관한 고민이 합쳐져 있음. 두 번째 파트에서는 두 사람이 어떻게 커밍아웃 하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지를 다룸.

- 전근 파트까지는 드라마 팬들에게 익숙한 페이스로 전개됨. 근데 전근 이야기가 대략 45~50분 무렵에서 끝나고 나서부터 페이스가 급격하게 무너짐. 양가의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올린다는 이야기인데 그사이에 남자친구를 데려가는 것에 대한 긴장감, 가족의 수용에 대한 안도감, 동성 부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에 대한 염려, 프로포즈, 결혼식, 동화작가로서 작품을 낸 아다치까지 조금씩 다 나와 있어서…. 드라마에서 유독 잘 드러났던 이야기의 세부를 다루는 감독의 장기가 거의 보이지 않음.

- BL이라는 장르 자체가 다소 비현실적인 세팅에서 감정의 교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체리마호고 그런 장르의 규범을 잘 따르는 편인데, 영화판에서는 사회적인 것이 들어오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는지를 조명하지 못함.

- 상견례나 결혼식 장면에는 어느 정도 감독의 디테일이 드러나 있는 거 같기도 한데, 예를 들면 아다치의 부모님이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계속 긴장한 (어떻게 보면 다소 못마땅한) 상태로 쿠로사와와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쿠로사와 모친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같은 식의 애매한 태도 같은 것. 무엇보다 결혼식의 하객이 매우 적고(제작비가 너무 적어서 그런 거겠지…?) 정말 가까운 사람들뿐임.

- 이런 면에서 영화가 충분히 '사회'적 이슈에 개입했다고 보기도 어려움. 커밍아웃-결혼식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가까운 사람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공인을 받는 것이었고 결말에서도 그 정도 목적을 성취함. 그런데 2022년의 일본 도쿄에서는 이미 동성 파트너십으로 동성 커플이 (이성애 부부와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공적 지위를 획득할 수가 있네요. 그래서 영화가 결혼 이슈를 가져오는 방식이 조금 뒤늦은 느낌도 있고 지나치게 개인화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디다. 

- 그 결과 이 영화는 감독의 장기나 장르의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회적 의미도 획득하지 못한 채 표류하게 된다…. (슬픈 결론)

- 결혼 이야기를 두 사람의 감정에 집중해서 조명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카자마 감독이 꽤 영리하게 연출을 해온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했다든가 제작 과정상의 이슈가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이렇게 최종판이 나와버렸네요. 원작 10권까지의 이야기를 커버하고 있고 아무튼 결혼도 시켰으니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기 힘들 것 같고요. 아쉬운 결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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