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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 질투, 의심, 혹은 한 번 더 애착하기: 〈헤어질 결심〉 리뷰 본문
충동은 다른 요인 (특히 자아의 구성을 통해) 수정되지만, 타인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쾌락에 있어서 그 성애적 기초로 존속한다. 극단적인 경우, 충동은 고착되어 도착이 되고 강박적인 관음증 환자를 낳는다. 관음증자의 유일한 성적 만족은 (능동적인 통제라는 의미에서) 대상화된 타자를 보는 것에서 비롯한다—Laura Mulvey,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탐정은 자신의 삶 곳곳에서 한 가지 질문의 변주를 발견한다. 당신은 언제 당신의 결혼이 엉망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언제 사랑에 빠진 것을 아는가? 무엇이 당신을 헤어질 결심으로 이끄는가?—Peter Bradshaw, Decision to Leave Review, The Guardian(2022.5.23)
*스포일러 포함
〈헤어질 결심〉은 시선과 그 시선에 얽힌 욕망에 관한 영화다. 한 캐릭터는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캐릭터를 본다. 나는 종종 포착되어 있음을 안다. 거기에서 빠져나가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지만 종종 시선에 얽힌 욕망에 몸을 맡긴다. 의탁은 폭력적이며 안온하다.
시선과 대상화의 문제는 현실의 배반에 의해 복잡해진다. 타자가 자신의 시선 끝에 걸려 있는 대상으로부터 연거푸 미끄러질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타자를 자신의 시선 속에서 구축된 환상에 맞춰 교정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고, 스스로의 관찰을 통해 자신의 환상을 수정할 수도 있다. 영화는 이런 응답이 언제,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응답이 어긋날 때 어떤 파국이 찾아올 수 있는지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의 첫 장면에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은 자신의 후배 경찰인 수완(고경표 분)에게 복잡해 보이는 살인 사건을 우리 둘이 해결하자고 달랜다. 수완은 그 사건을 물고 늘어져야 할 까닭이 있는지 의심하지만 대체로 자신의 롤모델인 해준을 존중한다.
설득과 구슬림이 아무튼 존재했던 둘 사이의 관계는 기도수(유승목 분)라는 출입국사무소 공무원이 사망하고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서래(탕웨이 분)가 나타나면서 흔들린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한다. 그녀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당황하기는커녕 "마침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패턴을 알고 싶은데요"라는 해준의 질문은 두 가지로 들린다. 전남편의 핸드폰 비밀번호를 알고 싶다는 말과 서래의 패턴을 알고 싶다는 질문이 겹쳐 있다. 서래는 한국어가 서투르다고 둘러대지만 해준은 그녀를 알아갈수록 서래가 항상 한국말을 정확하고 단정하게 구사하려는 사람임을 알아챈다.
해준은 서래를 친절하게 대한다. 해준을 존경하는 후배 수완은 해준이 서래에게 가격이 꽤 나가는 초밥을 사주는 모습을 보고 자신에게 싼 것만 먹으라고 하더니 예쁜 피의자에게는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이냐고 따진다. 평소였으면 서래가 사는 곳 주변에서 계속 잠복해서 그녀의 일상을 감시하지 않았겠냐는 소리에 해준은 잠복 근무를 재개한다.
해준은 잠복한 채 서래를 감시하면서 자신이 서래를 바라보는 방식 속에 서래를 넣어본다. 이런 관음증의 시선은 서래가 자신이 볼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 나가버릴 때 극대화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TV를 보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 이후 서래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해준은 자신이 서래의 옆에 있고 재떨이를 대줄 수 있고 닿을 수 있다고 느낀다. 시각을 시작된 관음증은 그녀가 피는 담배 냄새를 맡고 떨어지는 담뱃재를 느낄 수 있는 지점까지 극대화된다. 물론, 해준의 상상 속에서.
해준은 수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서래를 의심한다. 의심이 계속 된다면 그녀를 불러내고 감시하는 일이 정당화된다. 의심은 서래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과 분리되지 않는다.
해준은 유능한 형사로 등장한다. 그는 최연소 경관이 될 만큼 입지전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취조나 거짓말 탐지기 같은 고전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 최첨단 정보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수사에 활용한다. 수완은 그를 동경해 부산까지 따라왔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유능한지는 확실치 않다. 카메라(그리고 관객)는 주로 해준을 따라가기 때문에 해준의 시선을 통해 영화 속 세상이 그려진다. 그 세상 속에서 해준의 의심과 집착은 그의 감각적 정황과 증거를 통해 충분히 뒷받침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 해준의 집착은 증거가 없다. 서래는 해준이 '품위가 있어서' 좋다고 말하면서 '현대인치고는'이라고 덧붙인다. 서래의 말처럼 해준의 세계는 현대적이지 않다. 현대적이지 않다는 말은 다양한 관점에 동등한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그의 상사는 그에게 쓸데 없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기도수 사건을 실족사로 종결시키고 더 중요한 사건에나 집중하라고 구박한다. 수완 역시 해준이 서래를 대할 때 과도해진다는 점을 연이어 지적한다. 처음에는 그녀를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서 불만을 표하고, 나중에는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계속 서래 주변을 맴도는 해준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해준의 시선은 서래를 향해 있지만 서래를 향한 시선은 자기를 향한 시선과 얽혀 있다. 자신만이 그녀를 제대로 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형사로서 피의자인 그녀를 계속 보아야 한다는 믿음 혹은 욕망은 자신이 보는 세상에서는 정당화된다. 해준이 남들보다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만큼 그의 세상은 좁아진다. 그의 관점 속에서 구축된 세계 속에서 그의 의심은 충분히 합당하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너무 좁고 때때로 바깥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
해준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구축한 좁은 세계 속에서 서래는 아주 복잡한 인물로 보인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범인이 아니냐고 말하는 수완에게 슬픔을 참다가 한순간에 슬픔에 함락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녀를 변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의 예상을 벗어난다. 이는 해준의 시선을 벗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망원경의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고, 잠복 근무를 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해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해준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대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 들이거나 자기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서래는 남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녀는 간호사였고, 엄마를 볼보고 죽였고, 한국에 와서 돌봄 노동자로 일하고 집안에서 남편의 학대를 받으면서 그의 뒷바라지를 한다. 서래가 월요일에 돌보는 할머니(정영숙 분)가 인공지능 비서 시리를 호출할 때의 발음과 돌보미인 서래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종종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해준도 돌본다. 그를 안심시키고, 숨을 얽어 그를 재우고, 그의 욕망에 이정표를 제공한다. 해준은 항상 서래를 잡으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자신의 예상을 초과해 흘러 넘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떤 사건을 자신의 시선에 따라 편집하고 배치하는 데 능숙한 해준은 자신의 능력이 통용되지 않는 상대,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의심했으나 그런 혐의를 벗어난 존재, 그 이후로도 자신의 예측에서 엇나가는 서래를 사랑하게 된다. 나중에 그는 서래의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이 세상을 구성하던 방식이 흐트러질 때 사랑을 느꼈던 인물이다.
사실 서래의 진실은 단순하다. 그녀가 남편을 죽였다. 자신을 감시하는 전화와 카메라를 모두 속이고 남편이 알려준 경로로 돌산을 올라 자기 손으로 남편을 밀어 떨어뜨렸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전까지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보였던 그녀의 행동은 순전히 실수이거나 당황이나 변명으로 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서래의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질투가 지니고 있는 어떤 힘, 이를테면 현실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힘에 감복하게 되었다. 수완의 볼멘소리는 서래를 향한 질투를 담고 있었고, 그 질투를 통해 어떤 매혹도 없이 서래를 보았을 때 그녀의 행적은 다분히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해준을 통해 서래를 보던 관객은 이 순간 자신도 속고 있었음을 지각한다. 해준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있지 않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는 서래의 시선 속에서 뒤틀리고 제자리를 잃는다. 그녀의 위엄과 아름다움 때문에 한때 강고해졌고 이내 허물어진 의심이 망상이 아니라 진실과 맞닿아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해준이 서래의 트릭을 알아내고 그 사실에 대해 추궁할 때, 서래는 아마도 생존 본능 때문에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른다. 서래는 그 녹음 파일을 지우는 대신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붕괴의 사전적 의미로 저장해놓고 자기 삶이 무너지고 깨어질 때 해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그리워 하고 그 그리움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산해경을 참고했다는 영화는, 산의 이야기가 끝나고 바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해준은 서래를 떠나기 위해 부산을 떠나 아내 정안(이정현 분)이 일하는 가상의 도시 이포에 정착한다. 이포에는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 해준은 이제 (정안의 말에 따르면 그의 생기를 북돋는) 피와 살인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산다. 그는 붕괴되고 낡고 닳았다. 다른 사람들(정안의 직장동료 이 주임)에 의하면 망가져서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한참 늙었다.
낡고 지친 그의 심장은 서래와 그녀가 연루된 살인 사건을 만나면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서래의 두 번째 남편 호신(박용우 분)은 고급 맨션의 수영장에서 살해 당한다. 명백한 살인이고 칠성이라는 깡패가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지만 해준은 서래를 의심한다. 그는 세상에서 그녀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타인으로서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믿음이 합당하다고 여긴다. 이포에서 해준의 파트너는 수완 대신 연수(김신영 분)의 몫이다. 연수는 해준에게 살인자가 자백을 했는데도 서래를 왜 자꾸 의심하는지 따진다. 해준은 자신이 의심하는 까닭을 밝히지 못하기에 자신의 믿음을 남의 시선과 견주어 볼 기회를 잃는다. 그의 세계는 더 좁아진다.
하지만 돌산에서의 의문스런 죽음을 의심했을 때처럼, 이번 의심도 일말의 진실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해준은 서래가 자신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사랑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칠성의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려던 남편의 살해를 유도했음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을 알게 된 해준은 러닝 타임 내내 그랬던 것처럼 서래의 뒤를 쫓는다. 서래는 해준보다 항상 조금 더 앞서 있다. 그녀는 만조가 되기 전 해변에서 구덩이를 파고 자신이 이 구덩이에서 탈출할 수 없도록 여러 조치를 취한다. 곧 물이 들어오고 해준은 이번에도 늦었다.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해준은 계속해서 서래의 이름을 외친다. 그는 서래를 볼 수 없을 때 그녀 옆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이제 그런 상상은 불가능하다. 그녀는 보이지 않고, 그의 시선은 갈곳을 잃고 소리는 크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목소리가 절박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영화는 오랫동안 해준이 서래를 보듯 세상을 뒤틀고 그 일부를 과하게 조명하여 진실을 부각하는 일을 해왔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부각하는 연출과 시선을 통해 사건을 경험하고 그 세계에 안착한다. 이 영화는 해준의 붕괴를 통해 영화가 오랫동안 수행해 왔던 이런 동일시 작업을 경계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유난히 섬세하고 유기적으로 편집되어 있다. 해준이 서래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두 번이나 의심하고 그 의심이 진실이 봉인된 상자를 열었던 것처럼, 관객은 영화의 유려한 흐름에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물론 그 의심이 그려내는 세계는 자기만의 시선 속에서 뒤틀려 있겠지만 그 안에 진실이 있을 때 의심과 비판은 허무하지 않다.
그래서 그 결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선(시각성)에 관한 것일 수도, 서사에 관한 것일 수도, 관계와 애정에 관한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 전부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선 속에서 형성된 관계, 그 관계를 통해 교환되는 애정과 이야기들은 단일하지 않다. 거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시선이 얽혀 있고, 어떤 위치나 시점에서는 사태가 안개에 휘감긴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거나 구덩이 속에 파묻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해준은 서래가 묻힌 바로 그 구덩이 바로 옆에서 서래를 찾는다. 영화의 스타일리시함을 과시하듯 여러 번 쓰였던 시점숏(예컨대 기도수의 눈동자나 시계에서 기도수가 떨어진 산을 올려다 보는 시점숏, 아이폰이나 애플워치의 시점숏 등)은 이번에는 서래의 무덤에서 해준을 올려다 본다. '네가 찾으려는 건 여기에 있어.' 해준이 '찾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진실? 아니다. 이미 그는 진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렇다면 서래일까? 혹은 서래의 시체? 자신을 향한 서래의 사랑? 그 전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서래 자체보다는 서래가 존재하는 미래를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찾는 것이 무엇이든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 과거와 흔적을 앗아가는 파도가 굽이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서래를 찾는다. 그의 집착은 부착될 대상을 잃고 애착이 되어 그 자신에게 돌아간다. 애착은 순간이 지나가 버리지 않게 자기를 붙잡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비판이 오늘날의 세상이 그냥 지나쳐 버려도 된다고 외치는 대상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감정, 관계, 서사를 비판하기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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