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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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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1)

herimo 2013. 5. 4. 23:37

좌파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1)


사실 애초에 이 글을 계획했을 때, 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 에서 “좌파”(Left Wing)에 관한 글을 찾아서 옮기고 간단히 내 생각을 더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뭐든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 가장 중요한 “좌파” 항목이 저 문헌에 없던 것이다. 갸악-_-;




키워드

저자
레이먼드 윌리엄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0-09-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문화 연구 개척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사회 문화 보고서현대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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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왕 계획한 것이니만큼 조금 에둘러 가더라도 “좌파”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는 글을 쓰긴 써야겠다 싶었고 『키워드』는 좋은 참고 문헌이 되어 주었다. “좌파”에 대한 사전적인 설명은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인용하도록 하겠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사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대략의 유래라든가 개괄은 어떤 사전을 봐도 비슷할 것 같다)


In politics, left-wing describes an outlook or specific position that accepts or supports social equality, often in opposition to social hierarchy and social inequality. It sometimes involves a concern for those in society who are perceived as disadvantaged relative to others and an assumption that there are unjustified inequalities (which right-wing politics views as natural or traditional) that need to be reduced or abolished.


정치학에서, 좌익이란 사회적 평등을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관점이나 특정한 입장을 말하며, 보통 사회적 위계나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한다. 이는 때때로 사회에서 다른 이들에 비해 불리한 것으로 감지되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 및 줄어들거나 없어질 필요가 있는 (우익에서는 자연스럽거나 전통적인 것으로 보는) 부당한 불평등을 가정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The political terms Left and Right were coined during the French Revolution (1789–1799), referring to the seating arrangement in the Estates General: those who sat on the left generally opposed the monarchy and supported the revolution, including the creation of a republic and secularization, while those on the right were supportive of the traditional institutions of the Old Regime. Use of the term "Left" became more prominent after the restoration of the French monarchy in 1815...


좌/우라는 정치적 용어는 삼부회의 자리 배치를 언급하는 것으로, 프랑스 혁명 시기(1789-1799)에 주조되었다. 군주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개 그의 왼편에 앉았으며 

혁명, 공화정의 탄생과 세속화를 지지했다. 반면에 오른편에는 전통적인 구체제의 지지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좌파"라는 용어의 사용은 프랑스 왕정 복고(1815)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


여기에 더해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폭넓은 단어 '좌파(the Left)'는 프랑스혁명기에 의회 의석의 우연한 배치에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부터 알려졌지만 일반적인 표현으로 확대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좌파주의(leftism)'와 '좌파(leftist)'라는 단어는 1920년대까지 영어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43).


의외로 좌파라는 용어가 지금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사실 우리가 '좌파'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들은 있으나 그 이미지가 모두 같지도 않고 같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좌파'는 분명히 논쟁적인 용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난 실제로도 논쟁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좌파'라는 용어의 이미지를 떠올릴 만한 몇 가지 사례를 들기 위해 윌리엄스의 책에서 계급(Class)과 이데올로기(Ideology)에 대한 글을 몇 자 옮겨 적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17세기 말 이후, 집단이나 구분을 뜻하는 일반명사 'class'의 용법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시 아주 곤란했던 문제는 'class'가 일반적인 어의로 식물이나 동물에서처럼 인간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는데 현실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사회적인 내용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 계급의 근대적 의미가 처음으로 읽히는 예는 대니얼 디포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이다. "임금이 높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다른 나라보다 많은 계급들로 나뉘는 것은 명백하다."(《리뷰》, 1705년 4월 14일)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맥락에서의 논의일지라도 그리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곡절을 드러낸 중요한 배경이 사회적 분류를 지시하는 또 다른 어휘들의 존재이다 (84-85).


윌리엄스는 이 지점에서 '신분(rank)'과 '서열(order)'의 예를 이야기하고 특히 '신분(rank)'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실상 '신분(rank)'과 '계급(class)'은 대비되는데 "계급을 둘러싼 사회적 의식의 고양이란, 개인의 지위에서 유동성이 커진 탓도 있지만 중요하게는 새로운 의미의 사회, 즉 새로운 종류의 구분을 포함해 사회적 구분을 만들어 낸 특정한 사회제도가 출현한 데서 비롯한다" (86).

이렇듯 '계급(class)'이란 용어가 18세기 후반 이후 널리 쓰이게 된 요인을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적 변동,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 등의 정치적 격변을 거치며 한결 날카로워진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계급'이란 새로운 어휘가 완성된 것이다."라고 윌리엄스는 요약하고 있다 (86).

종래에 'class'가 '집단'의 의미가 기본이었다면 이제 점차 '계급'의 의미로 이동해가는 징후를 보이게 된다. 다만 이 용어는 역시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며 또 다른 용례를 추가하게 된다.

당대 '상층계급(higher class)'은 "잔존하여 존경받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붕괴된 귀족 계급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고, "'중류계급(middle class)'이란 신분이 있는 사람들과 평민 사이에 존재함을 스스로 자각한 표현"이었다." 중류계급은 사실상 "'high(위)'와 'low(아래)'의 서술방식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삽입된 것이다" (88).

여기에 더해, 1830년대에 이르러 생산계급(productive class)은 유용한 계급으로 구별되었다. 

다시 말해 중간계급(middle class)이라 자칭하는 이들과 이 시기 말경에 노동자계급(working class)이라 자칭하던 이들은 사뭇 다른 사람들이지만 공히 특권계급이나 유한계급과 대조적으로 '유용한 계급'이나 '생산계급'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이러한 용법은 '하류, 중류, 상류'라는 또 다른 분류법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중요하고도 혼란스러운 문제로 남아 있다 (89).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은 1840년대에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노동자계급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그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인지, 아니면 임금 혹은 급여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모든 사람인지에 대한 혼란은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의 용례에도 잘 나타나있다. "'노동자계급'만이 '일'을 한다고 단언하는 건 어처구니없지만 '육체'노동 이외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상대적인 사회적 위치(즉 중간계급)을 점한다고 주장할 경우 혼란은 피할 수 없다" (92).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 '계급'이란 용어는 추상 개념으로서 대단히 다양하게 사용된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좌파'와의 연계를 고려해 마르크스의 용례를 살펴보겠다.

각각의 개인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는 것은 다른 계급에 맞서 공동의 투쟁 전선을 펼쳐야 할 때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봐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한편 계급 자체는 개개인을 초월한 독립된 존재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의 생활 조건이 미리 규정되었음을 발견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개인적 성장이 자신이 속한 계급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독일 이데올로기』(95에서 재인용)

이 문구의 의미를 보충하기 위해 윌리엄스가 인용하는 것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어 18일』의 일부이다.

수백만 가정이 주어진 경제적 존재 조건 때문에 생활양식, 이해관계, 문화 등의 측면에서 여타 계급과 분리되어 적대하고 있다면 그들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자작농 간에 지역적인 연결이 부재한 탓에 서로의 이익이 일치할지라도 그들 사이에 어떠한 공동체나 전국적인 연합, 정치조직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어 18일』(95에서 재인용)

즉, 마르크스는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계급 의식'을 가진 조직체로서 '계급'이란 용어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계급투쟁', ' 계급 갈등' 등의 용어에서는 단일한 조직체가 아닌 복수의 조직체들이 상정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이데올로기가 연결될 수 있는데, 원래 이데올로기는 "형이상학과 구분되는 관념학"을 일컫는 프랑스 철학자 데스튀트 드 트라시의 용어 ideologie의 번역어였다. 즉, 이때 이데올로기는 학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 용례는 19세기 말까지 사용된다. 여기에 '공론', 혹은 '쓸데 없는 의식' 따위의 의미를 추가한 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곧, 19세기 초 이후에 이데올로기는 경멸적인 의미로 소비되는 단어였다. 이러한 경멸적 의미의 연장선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용례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르크스적 유물론에서 관념은 지배적인 물질 관계의 표현이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이데올로기가 산출된다. 즉, 이데올로기란 현실의 전도된 형태인 것이다 (229 참조).

우리리엄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론』, 『메링에게 보내는 서신』 등의 인용문을 요약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란 추상적인 동시에 허위적인 사유였고, … 진정한 물질적 조건과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서 언명되고 있다. … '환상, 허위의식, 비현실, 전도된 현실'이라는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 속에서 도드라진다 (230-231).
 
하지만 이와 다른 용례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에 등장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환상이 아닌 생산의 경제적 조건의 상태와 그 변화로부터 생겨난 갈등을 '의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의 경제적 조건에서 물질적인 변형과… 인간이 이때의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투쟁할 때의 상태, 즉 법적, 정치적, 종교적, 미적, 철학적 형태, 요컨대 이데올로기적 형태와는 늘 구별해야 한다 (231-232에서 재인용).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레닌이 이데올로기란 말을 사용할 때 이러한 의미가 두드러진다. 예컨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립을 설정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사회주의가 프롤로테리아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인 이상,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탄생, 전개, 강화라는 잘 알려진 조건하에 있다.

『북방 연방에 보내는 서신』(232에서 재인용)


1편에서는 이 정도로 하고, 2편에서는 이러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적으로 '좌파'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바가 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다양한 용례가 튀어나올 게 뻔하고 그중 어떤 것도 가장 옳다고 주장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어떤 의미로 갔을 때 생산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이라는 말로 모든 견해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 무리들에게도, 상대적이란 말이 갖는 한계점을 언급하고 싶다.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밤이 늦은 고로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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