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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고등어

herimo 2013. 4. 26. 00:51

#북리뷰 - 북리뷰에도 한 줄 요약을 탑재키로 함.




고등어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오픈하우스 | 2010-08-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공지영 대표작1988년 「창작과비평」에 단편 동트는 새벽으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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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 『고등어』(1994)


요즘 공지영 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특히 『의자 놀이』 관련)이 있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일단 빼고 글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런 입장화는 결코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라는 것도 밝혀둔다.


박완서 씨는 이 책의 표지 후면에 있는 박완서 씨의 추천사에는 80년대에 대한 끝나지 않은 사랑이라 쓰고 있다.


<이건 사랑 이야기군, 하면서 처음 몇 장을 읽었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불륜의 사랑은 좀더 재미있어한다. 이혼한 남자와 유부녀의 사랑이니까 그런 구색까지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감동스럽게 하는 더 못 말리는 불륜은 그들의 이십대,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으려는 바보 같은 꿈을 위해 헌신했던 저 80년대에 대한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80년대를 말하려면 정석처럼 따라다니는 허무나 자포자기의 폼을 공지영은 거의 잡지 않는다. 만일 백자반이 되어 좌판에 누운 간고등어가 창공처럼 푸른 등을 번득이며 유영하던 자유의 바다를 잊지 못한다면 그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정체성에 대한 긍지가 아닐는지.’ ─ 박완서 (소설가)>


80년대를 다루는 소설, 운동권,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향수 등의 몇 가지 코드는 자연스럽게 권여선의 소설 『내 정원의 붉은 열매』(2007, info: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358600)를 떠올리게 한다. 이 두 소설의 외형상의 공통점이라면 누가 뭐래도 여자 주인공이 남자 상대역을 '형'으로 부른다는 것. 바로 이 점에서 나는 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80년대에는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고 그런 문화는 지금 사라져 버린 후이기 때문이다. 공지영 씨는 후기에서 90년대에 20대를 시작하는 당시의 젊은이들을 보게 된 것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심지어 90년에 생을 시작하였으니 내가 80년대에 가질 향수랄 것도, 그리움이랄 것도, 아쉬움이랄 것도 하등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를 다룬 이 소설들에서 일종의 기시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80년대에 내가 그리움을 정박시킬 그 어떤 사건도 없지만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을 갖고 함께 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너무 멀어졌지만 멀어진 경로가 틈틈이 길에 새겨져 있어 문득문득 되돌아 보게 되면서도 점점 흐려져 가는 그런 기억들은, 난 누구나 갖을 수 있는 옛것에 대한 기억과 향수라고 생각한다. 채 30년을 살지 않은 나에게도 그 엇비슷한 것은 있고 그런 것은 꼭 10년이라는 시간의 유예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론 마음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멀어진 어떤 기억에 대한 거리는 얼마나 길 것이며, 그 긴 거리가 무색할 만치,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며, 또한 한때는 가까웠던 것일까?


소설 『고등어』의 주인공인 명우는 일종의 전기 작가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게 살아온 사람, 한번도 패배한 적 없는 이들의 부르주아의 일생을 재구성해주는 사람인 게다. 그러나 그도 한때 운동권 청년이었고 마르크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책들은 아직도 서가에 꽤나 많이 꽂혀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운동으로부터 멀어진 하나의 트라우마가 있다. 운동권 후배이자 아끼는 동생의 애인이었던 은림과 관계를 맺은 바 있고 그 사건이 자신의 애인이었던 연숙에게 들키며 그의 이십대는 진통을 겪는다. 결국 은림은 그의 남자친구와 결혼하지만 단 하룻밤만에 명우의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는 노동권 투쟁 중 과로와 체력 저하로 유산하게 되고 이제는 은림의 남편이 된 애인은 유감이라는 사람들에 말에 괜찮다고 답한다.


주인공 명우에게 이런 뒷얘기를 이야기하는 은림의 모습은 미련함이지만 동시에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반성으로 다가온다. 그전까지 알면서도 외면했던 것, 그가 떠나왔던 어떤 열정에 대한 향수가 다시금 피어오르며 그 자신을 변절자라는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 소설이 주는 어떤 그리움과 아쉬움, 옛것에 대한 향수는 단순히 세월의 무상함에만 잊지 않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도 확답을 줄 수 없는 규정 불가능성에 있기도 하다.


다만, 이 소설이 그토록 향수의 대상으로 삼는 80년대는 마지막까지 전혀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으로(특히 은림의 죽음은 일종의 소설적 장치로서 그 시절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든다) 남는다. 그것은 가까이 갈 수 없기에 화해할 수도 없고 그저 한 사람이 오롯이 품고 나아가야 하는 외상으로 남는다.


소설 『고등어』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인공 명우의 자리인데, 그의 자리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부르주아도 아니고 마르크스 주의자도 아니다. 누군가의 남편이나 남자친구도 아니다. 이러한 명우의 '자리 없음'은 그의 향수 역시 갈곳을 잃고 떠돌게 되는 유령적인 어떤 것, 떠다니는 어떤 것으로 자리 잡게 한다.


현대인의 '자리 없음'을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이 소설에서는 그 '자리 없음'이 하나의 자리로 인식되지 못하고 그저 여러 군데를 쿡쿡 찔러봄으로써 자리를 잡으려 하는 명우의 불안정한 위치가 문제가 된다. 그는 왜 자신의 상처를 상처와 흉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리려 하는가? 상처와 흉 역시 숙명이라면 그저 받아들이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론이지 않은가?


공지영 씨가 후기에서 밝히듯 젊은 시절이 시대에 희생당할 때, 청춘을 돌아보면 건져올릴 것은 아픔밖에 없는가? 아픔을 아픔 그 자체로 받아들임으로써 무언가가 바뀌는 것은 아닌가? 


독후감의 마지막을 2008년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 씨의 『사랑을 믿다』에 나오는 구절 하나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작품집에서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처음 봤는데, 적어도 권여선 씨에게선 딜레마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었던 반면 2010년 대상을 받은 공지영 씨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등푸른 고등어였지만 간고등어 조림이 될 처지에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간고등어가 세상을 바꾼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권여선, 『사랑을 믿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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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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