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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knowledgement
연애에 대한 단상 본문
연애에 대한 단상.
난 최근 몇 달 간 연애란 서로가 서로를 독점적인 영역으로 침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른 이들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스킨십까지도 자신의 연인에게는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독점 관계를 깨어 버리면 화를 낸다. "니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니?"
동시에 연애란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소설적 상황을 실제로 있는 것인 것처럼 말해주고 그 소설적 상황에 대한 감상을 듣곤 한다. 내가 말해주는 소설적 상황은, '연인들끼치 서로 합의 하에 바람을 피우는 것은 어떤가?' 이 경우 바람이란 말은 성립되기 어려우니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 는 반응이다. 연애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서로의 합의에 달린 일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슬하에 자녀를 몇 명 둘지 결정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면 3명을 낳든 4명을 낳든 그건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의 자유라고 얘기했을 터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이렇게 인정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로 근본적으로, 혹은 본질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공인을 받아 온 일이 모두 옳다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것은 때로는 편리한 길이고 옳을 수도 있지만 국지적이고 작은 움직임은 무시하고 찌부려뜨리기도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새로운 연인의 형태가 출현한다는 가정 하에(다수가 다수를 진심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조류를 위한 새로운 윤리 체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윤리란 근본적으로 무리의 이치이고 나는 절대적으로 옳은 윤리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극단적인 상대주의일 수도 있지만 식인 풍습마저도 면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부족에서 식인을 통해 그의 넋을 기리고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풍습은 정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인가? 반대로 식인하지 않고 두는 것이 망자에 대한 큰 모욕이 되는 사회라면 어떠한가? 혹자는 이것들이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본질적으로 인간은 소중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보다 가치 있게 지켜나가는 방안은 살인을 중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식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가정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 역시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구성된 것 아닌가?)
결국 상황이 바뀐다면 윤리도 바뀌게 된다. 우린 '욕'의 존재를 통해 그러한 점을 옅볼 수 있다. 언어의 사회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특정 사회에서 욕이 되지 않는 말이 시간과 공간이 변하면 욕이 되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전통적인 가족 제도가 해체하는 시대에 살게 된다면 많은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모친을 기존과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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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오늘의 떡밥을 던져보아요.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 (1편)
일단 전 저 말을 아주 싫어하는 편입니다. 이성애중심주의 사상에 아주 핵심적인 말이면서도 천박한 가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모든 남성과 여성은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을 (긍정적으로는) 연애의 대상 및 (부정적으로는) 번식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게 된다는 거지요. 이 가정에서 가장 손쉬운 반박은 '순수한 친구' 사이인 게이와 여성 혹은 레즈비언과 남성의 관계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반례는 생략하고 저 명제에 생략된 가정들마저도 살려서 봐 준다면 이렇게 되겠네요.
-이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동성애자인 두 동성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가정도 할 수 있겠지만 제가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렇다면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부터 살펴보시요. 바로 '서로를 연애 대상/성적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랍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그나마) 인간의 종족 번식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정말 종족 번식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그래야만 하는지.
일단 그래아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정말 아닌 것 같아서 이야기를 생략하겠어요. 그 다음으로 현존하는 인간 활동은 대부분 (혹은 전부?) 종족 번식을 위해 구성된 것인가를 이야기하죠.
인간 활동이라고 말하면 너무 폭넓으니 인간 관계에 한정한 활동으로 좁혀서 생각해 봅시다. 이성애자는 동성 친구를 (연애 상대로) 사랑하지 않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가족들을 번식욕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니 뭐니 이런 사람 말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래선 안 된다.'는 '금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뭐 원초적인 금기니 뭐니 그런 얘기 하지 않더라도 그런 건 '해선 안 되는 것'이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하지 않죠.
하지만 애초에 특정 관계항에 있는 (동성 친구다/가족이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제한된다면 이 특정 관계가 무엇인지, 이러한 관계와 일반적인 친구의 관계가 어떻게 다른지 보면 저 주장이 어떤 입장에서 맞다고 볼 수 있고 어떤 입장에서 틀린지 알 수 있게 될 거여요.
그렇죠?
여기까지 어그로 끌고 잠시 휴식. 이 글은 원래 짧게 끝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1~2회 정도 관련된 글을 더 작성할 예정입니다. 이건 서론이라고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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