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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영화 루카 본문
지난 월요일 디즈니/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루카〉(2021, dir. Enrico Casarosa)를 봤다. 대표 트레일러 정도만 보고 가서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는데 디즈니/픽사 영화답게 능수능란하게 관객들에게 '이건 이런 얘기야'라는 배경을 까는 솜씨가 빼어났다. 시작할 때 '인간'의 시점에서 바다'괴물'을 조명하고, 또 바다괴물 사회에서 인간을 위험한 약탈자로 보고 있다는 대칭적 세계관을 빠른 속도로 소개하고 곧바로 그렇게 대칭적으로 증식된 공포의 세계 속에서 사는 어린 주인공 루카를 조명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어린 주인공답게 호기심 많은 루카는 어느날 우연히 인간들의 물건을 발견하고 그 독특함에 매료되고, 그보다 먼저 그 매력에 홀린 것으로 보이는 알베르토를 만난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며 아주 빨리 도타운 우정을 쌓는다. 루카가 계속 인간 세계와 가까워지는 것을 염려한 루카의 부모는 그를 심해에 사는 친척 댁으로 보내 인간 세계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알베르토가 부모가 쫓아올 수 없는 인간 세계로 같이 도망가자고 말한다. 두 사람은 원래부터 인간의 스쿠터 베스파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 베스파는 자유, 해방, 제한된 삶 바깥으로 나아갈 수단을 의미하게 된다. 두 어린 바다생물은 부푼 꿈을 안고 조심스럽게 인간들의 작은 마을 '포르토로소'에 잠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루카〉를 청춘물, 성장물, 버디물 정도로 취급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지브리 영화와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성소수자들이 이 영화를 소수자의 정체성을 숨기고 드러내는 것, 그 공포에 관한 영화로 본다. 이 영화에서 '바다괴물'은 물기가 마르면 곧바로 인간의 외양을 갖추게 된다. 인간으로 보이는 외모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은 낙인찍힌 젠더정체성 및 성적지향을 일부러 밝히지 않으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길 수 있는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숨겨진 정체성을 발각당하면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는 것 또한 성소수자들이 처한 위기와 유사한 작동원리를 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같은 맥락에서 인종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성경의 '에스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의 한 가지 원형에 해당한다.
정체성을 숨길 수 있고 숨겼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루카〉를 퀴어영화로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무리한 일도 아니다. 물론 두 사람이 숨기는 정체성이 바다생물로서 종적 정체성이기 때문에 이것이 젠더성체성이나 성적지향을 은유한다고 할 수는 있더라도 그 세부는 확실치 않다. 예컨대, 두 사람이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게이 서사로 읽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두 사람의 성적지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게이 서사로만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 덕분에 이 영화는 퀴어 서사로서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정체성과 공포에 관한 이 영화의 다소 모호한 태도는 (이런 모호한 태도는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가 퀴어영화라고 한다면 '아냐, 이건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이라면서 가르치려는 사람이 꽤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영화에 (그리고 넓게는 어떤 이야기에) 단 하나의 의미만 있다는 소박한 가정도 문제지만, 이야기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규율'하는 태도는 퀴어들이 정체성을 밝히고 인정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영화가 퀴어영화라는 건 이 영화가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소년의 성장영화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두 가지 해석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며 사실 그렇게 이야기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조명할 때 영화의 감상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특별히 주관적인 해석도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서사의 왜곡 없이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못 보인다면 못 보는 거지만…. 어쩌겠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해야지 엄연히 존재하는 해석이 틀렸다고만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성장영화로서 〈루카〉는 분명 한 소년이 안전하고 안온한 삶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조명한다. 퀴어영화로서 〈루카〉는 무엇을 조명하고 있을까? 우선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정체성을 숨길 수 있다는 가정, 정체성이 들어났을 때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상대방이 자신을 살해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위협과 그 공포, 한 가지 특성을 지닌 가족이나 종족을 모두 잡아 죽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만연한 혐오 등은 일상 자체가 위험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는 성소수자의 삶을 연상시킨다. 다음으로 이 영화는 그런 삶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때 소수자가 자신의 '동족'을 배반할 수 있다는 슬픈 진실을 보여준다. 루카가 알베르토를 배신하는 것은 그가 알베르토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배신 행위 자체는 루카의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알베르토를 지켜주지 못하고 자신은 그와 다름을 증명하려는 절박한 행위는 한편으로는 공포에 의한 인식 기능의 마비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에만 넘어가면 살아남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잔인한 희망에서 비롯된다.
물론 루카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 후회하고 사과하기 위해 알베르토를 찾아간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왜 알베르토는 혼자일지 의문을 품었겠지만 알베르토의 결핍은 그보다 작고 경험없는 루카에게 쉽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간 알베르토의 거처에는 무수히 많은 빗금이 그어져 있고, 루카가 알베르토에게 그 의미를 묻자 알베르토는 아빠가 돌아오지 않은 날을 셌고 지쳐서 그만두었다고 대답한다. 루카는 여러 번 사과하지만 알베르토는 한때 그에게 듬직하게만 보였던 '선배'나 '형' 같은 것이 아니고 루카의 사과를 바로 받아들일 만한 여유를 부릴 기력도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루카는 한때 그들의 꿈이었던 베스파를 구입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원래 계획과 달리 단독으로 철인삼종경기인 '포르토로소 컵'에 참가한다.
여러 난관을 잘 이겨낸 루카는 우승이 유력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했던 불운과 만난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에 젖어 변신이 풀리고 비늘이 모습을 드러낼 때, 루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리던 바로 그 때 멀리서 알베르토가 두 사람 모두를 가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파라솔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다. 자신에게 공포를 이기는 방법("닥쳐 브루노!")을 알려주었던, 키가 한 뼘쯤 더 크고 한때 동경했던, 뭐든지 알고 있을 거 같았던 친구, 한편으로는 줄리엣과 가까워지는 것을 질투하고 자기 자리가 없어질까봐 불안해 하는, 아버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은 연약한 친구, 그리고 다시 가까워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던 친구, 알베르토는 루카를 구하기 위해 루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레이스에 뛰어든다. 우정보다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알베르토의 애정은 한순간에 루카가 자신을 가둬두었던 틀, 사실은 루카 혼자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와 차별적인 세상이 만들어두었던 생존 가능성의 터전 바깥으로 뛰어 나올 수 있게 한다. 두 사람은 파라솔을 놓치고 비에 젖어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 채로 언덕을 굴러 떨어진다.
관객들은 이 시점에서 세상이 두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걱정하지만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음에도 그들을 좋아해주는 몇몇 마을 주민의 개입으로 상황은 싱겁게 해결된다. 이 어이 없는 마무리는 '로맨틱'하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사실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감독이 생각하는 공포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사실 우리의 생각보다는 덜 무서운 곳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갈등이 마무리되고, 루카는 자신이 바랐던 대로 친구 줄리엣과 함께 제노바로 가는 기차를 탄다. 그 표는 루카와 알베트로가 함께 쟁취한 포르토로소 컵의 우승 상금으로 구입한 2인용 베스타를 알베르토가 루카 몰래 다시 팔아서 마련한 표이다. 알베르토는 루카에게 자신은 포르토로소에 머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줄리엣의 아버지도 있고, 여기 일이 학교 공부보다는 자신에게 더 맞다는 이유에서이다. 루카는 알베르토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내 푸른 바다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한때 안온한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떠나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그곳에 두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모진 진실을 이미 루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햇빛이 바다 물결 위를 스쳐 반짝거리고, 그 반짝거림은 루카의 상상 속에서 별이 루카를 향해 쏟아졌던 것처럼 루카의 미래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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