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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물질적 힘에 대해, ‹청춘기록›(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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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물질적 힘에 대해, ‹청춘기록›(2020)

herimo 2020. 10. 19. 19:52

‹청춘기록›(2020, 연출 안경호, 극복 하명희)은 제목만 들어도 조금 갸우뚱거리게 되는 기획이다. 2020년에 청춘물은 이미 낡은 장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청춘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지금 청춘이라고 불리는 10대, 20대(조금 길게 보면 30대 초반)가 아니다. 청춘은 40, 50대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는 말에 가깝다. 청춘물이나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가 유행했던 것도 이 나이대 사람들이 막 자본시장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아가던 무렵의 일로 기억한다. 청춘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이나 재능으로 인한 계급(계층) 상승에 대한 욕망 역시 현재 10, 20대의 꿈으로 언급되진 않는다. 그들이 그런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바라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자본시장의 구조 탓이다.

 

 

‹청춘기록›에서 계급 상승의 욕망은 지리적으로 표상되어 나타난다. 매우 오래된 구조인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 즉 삼각관계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삼각관계를 그리는 다른 많은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삼각관계에 얽힌 두 남자를 그려내는 데 관심이 있다. 약간의 변주라면 (이런 변주 역시 식상해진 것이지만) 두 남자가 단순히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라는 설정이다. 두 친구는 그럼에도 대립하는 인물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드라마의 극본이 요새 드라마 치고는 거의 투박하게 느껴진 정도로 계급 차이를 선명하게 대조하는 구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사혜준(박보검 분)의 가족은 한남동 달동네의 셋방에서 살아가는 노동계급이다.

 

이 가족은 주인공의 부모는 어쩌면 중산층으로 상승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회를 주인공의 할아버지 때문에 놓쳤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부친과 모친 모두 노동시장에 뛰어든다. 부친 영수(박수영 분)는 목수로, 모친 한애숙(하희라 분)은 한남동 부잣집의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부친은 계속해서 아들들에게 현실주의자가 될 것을 종용한다. 정직한 노동과 그 대가는 어떤 호기를 잡고 못 잡는 것과는 달리 사람을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 아들 경준(이재원 분)은 그런 아버지의 뜻을 잘 따를 수 있는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그는 이 불경기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제1금융권 은행에 들어가고 심지어 여의도 본사로 발탁될 만큼 이 시대 젊은이들이 꿈꾸는 직장인이다. 하지만 작은 아들 혜준은 형과 비교당하면서 자신은 그런 식으로 안정적인 직업 세계에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됐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꿈을 꾼다. 그러나 이 꿈이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모델로 일해서 자기가 쓸 돈은 자기가 벌 정도의 생활력을 갖춘 인물로 나온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꿈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광의의) 연예계를 두려워한다. 그곳에서 가치의 함수는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그에게는 너무 모호하고, 그렇기에 그 세계는 평생 동안 노력해도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을 것만 같은 불공평함의 극치가 형상화된 것 같은 곳으로 비친다. 그래서 아버지는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서 안정성을 찾으려고 한다. 이 안정성은 두 가지 형상을 띤다. 한편에는 물론 아버지로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잘 알고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러한 가장되기의 투쟁은 자신이 살아온 직업 세계에서의 전문성, 노동자로서의 자기 가치와 존엄을 지키려는 의식과 연루되어 있다.

 

 

아버지 캐릭터가 상당히 보수적으로 그려지지만 어쩌면 더 보수적인 것은 어머니인 애숙이다. 첫째 아들 경준은 어머니 애숙을 '원래부터 고상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실제로 그녀는 아들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원해효(변우석 분)의 집에서 김이영(신애라 분)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가사 도우미로 일하지만, 이영보다 더 우아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가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않은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소박함이 있고, 우리는 그 소박함을 야망이나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이들의 태도, 즉 여유와 겹쳐 본다. 하지만 이 태도는 어떤 면에서는 패배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녀에게는 자기 혼자 스스로 꾸는 꿈마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하는 현숙한 어머니의 태도, 부잣집에서 처분하는 멀쩡한 비싼 옷을 입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소탈함 따위에서 그녀는 꿈을 꾸기에는 너무 소진되어 버린 노동자의 얼굴을 드러낸다. 고상하다는 말은 그런 태도에서 최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포장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의 가족과 대척점에 있는 친구 해효의 집은 사학 재단을 운영하는 오래된 부잣집이다. 이들 가족은 실패를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살아간다. 해효의 어머니 이영은 간혹 유치한 사람처럼 그려지지만 그녀야말로 이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야망을 지닌 현실주의자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부잣집 며느리 역할에서 끝나길 바라지 않는다. 자기 아들을 학교 이사장이 부업이고, 스타가 본업인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그녀의 계획은 그녀의 인생과 꿈이 결혼과 함께 끝나지 않게 해주는 동력이다. 그녀가 자신이 아들이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뒤에서 업계 관계자에게 건네는 돈 봉투의 액수만큼, 그녀의 꿈은 몽상이 아닌 현실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돈을 뿌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수작을 모른 채 기뻐하고, 자신에게 대항하는 아들을 보면서 자신의 통제가 성공했다는 기묘한 기쁨과 위안을 누린다. 그녀는 자식들의 말을 들어주는 어머니 역할을 거부하고 결코 지지 않는 엄마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런 성격 때문에 친구가 없는 그녀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도 있을 도우미 애숙과 달리 이영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야망가이다.

 

혜준과 해효는 이처럼 다른 경제적 배경을 지니고 연예계에서 일한다. 이 드라마에서 그리는 연예계가 현실을 닮았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현실의 연예계가 아니라 현실 자체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최소한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계속해서 꿈을 꿀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현실을 상징하는 장치로 들어와 있는 군대 문제는 그 꿈을 더 이상 꿀 수 없는 특정한 시기가 임박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영장이 날아올 때마다 연예계에서는 계속 꿈을 꿔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간헐적인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는 양면적이어서 잔인하다. 만약 이 꿈을 계속 꾸지 않기로 결심하고 현실(군 입대)을 받아들이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가 이 신호에 포함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꿈을 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돈이라는 점이다. 해효는 혜준에 비해 꿈을 계획으로 천천히 바꾸어나갈 여유가 있다. 그의 집이 지닌 재산, 그가 얌전히 돌아가기만 하면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은 그가 이 일에 실패하더라도 굶어 죽지 않으리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선택만 하면서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반면, 드라마는 혜준에게 (외모나 매력 같은) 스타로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강조하지만, 그 사실은 그가 기회를 잡은 이후에나 쓸모 있어진다. 그는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계속해서 영세한 기획사에서 일하고, 그의 가난에 주목하고 접근하는 스폰서 요구에 노출되고, 커리어와 상관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을 마모시킨다. 그 역시 이것이 최선의 길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는 최선의 요소를 조합시킬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첫 번째 요소는 이 드라마에서 연예계가, 현실에서 자본 시장이 지닌 가장 잔인한 일면을 보여준다. 그곳에 기회가 있을 것만 같다는 환상을 계속해서 심어주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는 불투명하다. 그저 그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드라마 속에서 혜준은 이 사실을 연기를 시작하면서 선명하게 인식한다. 그는 상상 속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계급 위치를 포함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앞으로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 어떤 현실적인 제약마저도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인식한다. 자신의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야말로 그가 다수의 작품에 출현하여 자신의 배역을 알맞게 연기해 내는 동력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의 친구 해효는 연기하는 그를 보고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고 말한다. 가장 친한 친구도 몰랐을 그의 모습은 그가 오랫동안 현실 속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길 꿈꿔 왔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닌가?) 이때,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환상이 물질 세계에서 현실로 변환된다는 점이다. 혜준은 자신의 현실을 잊게 해주는 환상의 세계에 몰입한 결과 현실에서의 부와 명예를 얻는다. 이 사실이 뚜렷해질수록, 정확히는 그것이 재산이라는 형태로 변환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현실주의자였던 혜준의 아버지는 현실주의자로서 그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아들의 직업이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된 그 순간, 권위의 상속이 일어난다. 아빠-형, 할아버지-엄마-동생으로 나뉘어 균형을 이루었던 집안의 권력구도가 혜준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 순간을 피부로 느낀다. 혜준은 집안의 빚을 모두 갚고, 가족이 살았던 보금자리를 매입하고, 자기 방을 만들어 최소한의 사생활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에게 명성과 인기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막대한 자산이 주어졌다는 것을 그의 주변 사람들 모두 확인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그런 운이 서렸던 순간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더 확실하게. (이것이 해효와 달리 이영이 더 조급해지는 이유 중 일부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 접점을 통해 이 드라마가 우리의 세계와 맺는 메타적인 층위에도 각별한 울림이 생긴다. 만약 연예계가 환상을 통해 꿈을 현실로 변환하는 매개체라면 이 드라마는 어떤 꿈들을 긁어모아 어떤 현실을 그 결과로 생산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물론 이 극에 출현하고 있는 주연 배우들의 미래가 걸려 있고, 이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참여한 제작진의 생계가 달려 있을 것이며, 우리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CJ라는 기업이 지닌 의뭉스럽고 (아마도) 음흉한 자본주의의 논리도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는, 이 드라마 속에서 배우들이 입고 걸치고 먹는 모든 것이 광고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보다는 변동의 폭은 훨씬 더 좁아 보인다. 이 드라마가 라이징 스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주연 배우인 박보검의 이력과 겹쳐 볼 수 있다는 점은 이런 관측이 적절한지 살펴보기에 유용하다. 심지어 드라마 속에서 혜준이 맡는 작품은 배우 박보검의 참여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주연 배우 박보검은 ‹응답하라 1988›(2015-2016)을 통해 크게 이름을 알렸다. 그도 한때는 연속극이나 영화 단역을 맡으며 성공의 가능성을 가늠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작품은 다름 아닌 그해 CJ 최고의 기대작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청춘기록›이라는, 이전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라마와 이 시대의 현실이 지닌 가장 큰 차이다. 이 시대의 현실주의 논리에 따르면 재능을 갖춘 사람이라도 우연히 찾아오는 변화의 기회를 쥐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여러 번의 기회를 잡아야 하고 경쟁의 목표는 성공 자체보다는 그중 가장 유망한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드라마의 여주인공 안정하(박소담 분)는 혜준의 형 경준만큼이나 이 시대 청춘의 꿈을 잘 표현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무리 큰 대출을 끼더라도 서울에 자기 집을 마련함으로써 자본과 법이 지켜주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만들려고 한다. 이 시대의 성공은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고 확실한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층위에서만 보자면 스스로 그런 기반을 이뤄낸 정하에게 두 남자 주인공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해효는 자신의 부모 세대의 재산에 여유를 빚지고 있고, 혜준은 정하를 만날 땐 그런 여유가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메타적인 층위에서도 박소담 배우는 가장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 왔다. 기생충 같은 굵직한 작품에도 출현했고 그 전에도 독립영화 같은 작은 세팅에서도 충분히 기량을 발휘할 배우라는 점이 증명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가 여성과 성소수자를 다루는 방식이 다분히 구시대적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정하의 직장 상사인 진주(조지승 분)는 부하 직원인 정하의 가파른 상승세에 비합리적인 질투를 느끼는 인물로 등장한다. 요새 시대에 여성과 여성의 갈등을 질투라는 틀 속에서만 풀어내는 것은 게으르다. 여성 사이의 갈등을 그리더라도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캐릭터는 평면적으로 소비되고 등장해야 할 까닭을 풀어내기도 어렵다.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여주인공의 성장을 표시하기 위해 소모되는 것 같은데 왜 그런 캐릭터가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일한 성소수자는 패션계에 대한 환상과 호모포비아가 기괴하게 섞인 결과물이다. 유명 디자이너 찰리 정(이승준 분)은 혜준에게 반해 그의 스폰서가 될 것을 자청한다. 그 제안 속에는 환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혜준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역설적이게도 찰리 정은 그런 단호함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건넨 셈이다. 만약 혜준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혜준은 더 이상 그가 좋아했던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가 될 것이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혜준이 그가 좋아할 만한 사람임은 더욱 확실해지겠지만 그와의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 그리고 혜준이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던 중 그는 불현듯 자살한다. 그러나 그는 왜 이 시점에서 자살을 선택할까? 실패한 사랑의 왜곡된 표현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의 방 식으로 트라우마를 심어 상대방에게 영원히 기억되길 택한 것일까? 아무튼 그의 죽음 때문에 혜준이 그와 스폰 관계였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지고, 이는 주인공의 성공이 여전히 불확실한 기반 위에 놓여 있을 뿐이며 그가 극복해야 할 수많은 난관이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결국 이 드라마를 계속 보더라도 위기를 도입하려는 장치로서 소비됐다는 것 외에 그 이유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에피소드는 이미 극복된 과거의 에피소드가 되었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이 드라마는 벌써부터 두 남자 사이의 갈등을 좀더 직접적으로 조명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에 관한 드라마의 접근방식은 앞서 언급했던 자본의 음험한 논리와 함께 움직인다. 여성의 질투나 게이의 성적 추문은 크게 흥미롭지 않지만 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스토리라인이기에 검토되거나 기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자세한 사정에 눈을 돌리는 것은 아무래도 독립영화에서나 해야 할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요컨대, 이 드라마는 상품으로서 움직이고 있다.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판다. 이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들은 왜소하게 마모된 채 남아 있다.◻︎

 

(2020.10.19)

 

-여담. 공식 포토에 주연 외 다른 인물의 비중이 정말 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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