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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knowledgement
쉽게 읽는 헤겔: 정신현상학 본문
#북리뷰
Ralf Ludwig (1997), Hegel für Anfänger: Phänmenologie des Geists, Munich: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이동희 역 (1998), 『쉽게 읽는 헤겔: 정신현상학』, 서울: 이학사.
쉽게 읽긴 개뿔..이런 게 쉽다 그럴 때부터 거짓부렁이었음을 알았어야 했는데...
아무튼 이 책은 어디까지나 쉬운 주해서의 자리를 고수하려 하고, 일종의 (좋은 의미로) 교과서적인 해설을 중심으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이게 쉬울 리가 없는 텍스트라는 건데..
아무튼 간단히 리뷰를 하기 위해 책에서 인상 깊었던 테마를 두 개 선택하는 게 용이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가장 유명한 두 부분을 고르는 셈이 될 텐데, 하나는 그 유명한 "주인-노예의 변증법"(103 아래)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적 자유와 공포”(216 아래)에 해당하는 주석이다. 전자에서 나는 내가 이해한 바대로 헤겔의 변증법 및 즉자-대타-대자 존재에 대한 요약을 시도하고 이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덧붙일 계획이고, 후자에서는 “공포”에 대한 주디스 버틀러의 해석과 이를 보편성 및 정체성주의 정치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화두를 던져보고자 한다.
아무튼 시작해보자.
「주인과 노예」
이 책의 지은이 랄프 루트비히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장과 관련하여 마르크스가 했던 바와 같은 혁명적인 시각을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 말은 책의 제목처럼 “정신”의 자기전개 과정에 따라 이 단계(주인-노예)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단 이야기로 보인다(103).
저자가 시도하고 있는 발췌보다도 요약적인 발췌를 위해 순서를 매겨보겠다.
“1) 자기의식은 우선 단순한 대자적 존재이다. 또한 모든 타자를 자신으로부터 배제하는 자기 동일자이다. 그리고 자기의식은 이러한 직접성에 있어서 혹은 대자적 존재의 존재에 있어서 개별자이다.
2) 자기의식에 대하여 타자인 것은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 비본질적인 대상일 뿐이다.
3) 그러나 타자 또한 자기의식이다. … 그 의식들은 서로에 대해 아직도 순수한 대자적 존재로서, 즉 자기의식으로서 나타나지 못했다.
4) 대상은 곧 의식 자체가 지니는 … 순수한 확신으로서 나타나야만 한다.
5) 그런데 이것은 인정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불가능하다. … 다시 타자의 행위를 통하여 본래적인 자기에 있어서 대자적 존재의 이 순수한 추상화를 수행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주어캄프 판본 147f.=마이너 판본 143f.=임석진 역본 251f., 이 책 105에서 재인용. 이후 이 순서에 따라 인용할 것이며 쪽수 외에 별도의 표기는 하지 않음)
내 방식 대로 독해(혹은 오독)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지각-자기의식-이성-정신-절대지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체계를 변증법적으로 발전시킨다. 최초의 지각을 가정한다면 우리의 인식이 미치기 전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대상을 즉자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뒤이어 그 대상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에 대해 대타 존재가 되며, 대상화된 객체는 주체의 인식에 의해 대자 존재가 된다.
이 상태가 곧 자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이 동일자로서의 자기의식은 아직도 타자가 존재한다는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타자의 행위를 통하여 … 순수한 추상화를 수행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과업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는 개념이 “노예”라는 개념이다.
자기의식은 분열하여 두 형식, 두 형태를 갖게 된다. “자기의식은 자기 자신과의 구별 안에서 스스로를 이중화하였다. … 그러므로 자기의식의 이중화는, 자아가 자신의 반대물에 대립적인 것으로서 자신을 파악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107)
주인은 자기 자신을 아는 자기 의식이다. 이는 타자가 자기자신을 부정하려는 것을 저지한다. 이에 반해 노예는 대상적 세계에 있어 자신을 잃어버린 자기의식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에 집착하며, 자신을 자기의식 안의 동일자로 포섭하려는 위협(헤겔의 용어에 따르면 ‘부정’)을 저지하고자 한다. (108 참조)
이들은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서로를 인정한다.” (111에서 재인용)
그러므로 이들의 인정은 완벽하게 자립적일 수 없다. 주인은 노예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주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셈이다. “주인은 노예의 비자립성에 관계하는데, 이 비자립성은 투쟁에 있어서 노예에게는 사슬과 같은 것이었다. … 자립적인 주인으로서 “존재에 대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120)
노예는 주인을 위해 사물을 가공한다. 조악한 비유이지만 난 이 대목에서 본인의 영역을 끊임 없이 확장시켜가는 유기체가 안으로는 자신의 내부를 하나의 체계로 통일하려 하는 동시에 밖으로는 촉수를 뻗어 외부 세계를 끊임 없이 자신의 체계 안으로 끄집어 들어오려고 하는 그림을 상상하였다. 굳이 이미지로 따지자면 아메바나 유글레나 같은 게 엄청 커지는 그런 이미지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노예는 그 촉수에 해당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확장된 자기의식은 그러한 촉수-노예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주인과 노예 사이의 인정은 전도된다. 이 과정에서 노예 의식은 주인의 대자적 존재가 된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지워버리는 단순한 부정을 넘어 절대적 부정, 혹은 이중적 부정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그것은 부정의 부정으로 사물에 대한 의존성이 아닌 유기체적 하나에서 구별된 주인-노예의 의식 간에 상호의존성에 이른다. 따라서 이를 통해 의식은 비의존적 자립성을 갖는다. (123 참조) 노예는 노동을 통해서 자기를 잊게 되고, 노동하는 의식으로서 비자립성을 탈피하여 노예적 의식은 자립성을 획득한다. (126 참조)
이로써 적어도 “사유 속에서는” 자유로운 자기의식의 정립이 이루어진다.
「절대적 자유와 공포」
주디스 버틀러의 다음과 같은 고찰은 이 두 구절(「주인과 노예」, 「절대적 자유와 공포」)을 보다 현대적인 맥락 속에서 자리잡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 자유와 공포’라는 제목이 붙은 『정신현상학』의 한 장은 바로 국가 공포라는 조건 하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바를 고찰하면서 행위에 대한 이전의 개념들을 참조한다. 프랑스 혁명에 접근하면서 헤겔은 개인을 (a) 대상에 작용하며, (b) 그 개인에게 자신의 활동에 대한 반성을 제공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앞서 ‘지배와 예속[주인과 노예]’ 장에서 헤겔이 노동을 논할 때 지배적으로 등장했던 행동 규범이었다. …
스스로를 ‘보편성’과 ‘절대적 자유’라 부르는 체제 하에서 노동하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개인은 절대적 자유의 보편적 노동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Butler, 2000 [2009]: 42)
개별적 의식은 보편적 의지로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를 의식하고 개인적 의지는 보편적 의지 속에서 활동한다. 이를 위한 절대적 평등의 요구는 다시 한 번 모순에 빠진다. 프랑스 혁명에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시체들을 떠올려 본다면 그것이 바로 “순순한 부정이요, 더욱이 그것은 일반자 속에 존재하는 요소로서의 개별적인 것에 대한 부정이다.” (436=418=176, 218에서 재인용)
평등은 이와 같이 폭력적으로 산출된다. 이 평등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이 흔히 회자되는 보편성(Universality)을 의미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인용구들을 인용함으로써 이 리뷰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부터는 언젠가 쓰게 될 글의 도입 부분에 해당하고 그것을 완성하기에는 시간도, 자료도, 지식도 부족하며 무엇보다 페북에 더 이상 길게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은 모두 Butler (2000 [2009])을 참조.
보편성의 문제는 아마도 보편성의 교의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복무하는 데 활용되었음을 주목해 온 좌파 담화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33) … 어떤 것이 보편성 요구가 되어야 하고 어떤 것은 안 되는지, 누가 그 요구를 할 수 잇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는지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문화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주장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합의를 끌어내고 자신이 언표하는 바로 그 보편성을 수행적으로 실연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주장들의 의미와 힘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수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으로 번역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61) … 보편성의 형식과 내용 모두 고도의 경쟁에 참여하며 그것들의 전장 외부에서 접합될 수 없다. (65) … 보편성은 끝이 열린 헤게모니 투쟁에 귀속된다. (66)
참고문헌
- Judith Butler, “Restaging the Universal: Hegemony and the Limits of Formalism,”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co-authored with Ernesto Laclau & Slavoj Žižek, 2000), London and New York: Verso. [국역] 박미선․박대진 역 (2009),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좌파에 대한 현재적 대화들』, 서울: 도서출판 b.
- Ralf Ludwig (1997), Hegel für Anfänger: Phänmenologie des Geists, Munich: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국역] 이동희 역 (1998), 『쉽게 읽는 헤겔: 정신현상학』, 서울: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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