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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과 영화

herimo 2013. 4. 27. 18:17

지젝과 영화



-영화


일단 난 영화 보는 것을 거의 즐기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의식적으로 영화 보는 것을 피한다. 싫어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일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피로감을 자극하는 일이다.


표를 사고, 개인별로 구획된 자리에 앉아, 각자 먹을 것을 먹으면서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본다. 영화는 매우 개별화하는individualizing 매체이다. 심지어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볼 때도 영상이라는 것은 영상 이미지와 수용자를 1:1의 상황으로 몰고 간다.


영상 이미지를 대면하면서 느끼는 것은 일단 다 보기 전까지는 교환되지 않고, 무수히 많은 생각과 사고의 연쇄를 낳으며 이어진다. 크레딧이 오르면서 그 이어짐이 뚝 끝나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운"이라는 말처럼 그 사유는 최소한 흔적을 남기고 있거나 사고의 연쇄 속에 살아남아 계속해서 나의 생각을 자극한다.


나는 지금 이미지의 폭력성을 말하고 있다. 활자와는 조금 달리, 이미지는 즉각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그것은 반자동적으로 상징화(대개 언어화)되며 이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즉각적이다. 즉각적인 이미지가 무수히 흘러들어오는 것을 일일이 해석하고 기억에 담아두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영화를 다 보고 리뷰를 쓸 때쯤이 되어서야 이미지들은 내 속에서 하나의 선을 갖고 그 위에 자리매김되는데 그제서야 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나의 생각을 구출해낼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들을 보고 달리 생각되는 점을 이야기한다든가, 혹은 비슷하게 생각되는 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난 영화를 볼 때면 그나마 같이 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굳이 따지면 가장 싫어하는 장르는 액션 같은 우당탕 부서지는 류의 영화들인데, 그런 영화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할리우드풍의 도식들을 강요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이미) 내면화하고 있고 그것에서 가장 새로운 의미를 추출해봤자 할리우드 영화 자본에 대한 찬사 혹은 부담감을 표현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할리우드 영화라면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가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 같다. 할리우드가 제공하는 흠없이 매끄러운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할 필요가 없는 편안함과 동시에 생각없는 시간을 위해 제공한 10000원 가량의 돈이 아깝기도 하고, 혹은 생각이 범람하는 시대에 생각 안 하는 값을 지불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반면에 이미지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소위 "예술 영화"들을 볼 때면 반대의 생각이 든다. 생각이 범람하는 시대에 "생각 더 하는 값"을 지불하는건가? 하는 의문 말이다. 그래서 난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서 사유를 하는 데 익숙지 않다. 되려 반대의 일에 익숙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소설의 서사를 느낀다기 보다는 "읽어내는" 편에 가깝다. 읽고 나서 이미지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읽는 순간 내 속에 있는 몇 가지 도식들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책 페이지 수가 더해 갈수록 거기에 덩치를 불려가는 하나의 도식 덩어리로서 소설 읽기라고나 할까.



-지젝


지젝이 자신의 논의를 설명함에 있어 주로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영화"다. 특히 그는 라캉과 관련하여 이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지젝의 논의를 따라가기 버거운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How to Read Lacan같은 책에서 "성적 관계란 것은 없다"라는 라캉의 아포리즘을 이해시키기 위해 니콜 키드먼이 등장하는 영화를 이야기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사실 난 은연 중에 지젝이 영화를 믿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영화가 그의 이론의 핵심부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대중문화의 사례를 끌고 오는 것이 그의 시커먼 본성에 복무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는 질문에는 1. 라캉 2. 헤겔 3. 영화. 그 중에서 영화가 가장 쉬우니(정확히 말하자면 나머지 둘은 지젝보다 어려워서 손댈 엄두가 안 나는 수준이니 유일한 가능한 선택지가 영화인 셈)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통해 그의 논설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지 않을까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나의 이러한 이해도 맞긴 맞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젝이 직접 영화가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는 생각은 못 했었다.


"그는 “나는 라캉의 개념들을 본질적으로 저급한 대중문화의 개념들로 제대로 번역해낸 다음에야 비로소 그 개념들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확신했다”라고 스스로 털어놓았다. 그가 말한 ‘저급한 대중문화’의 표본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들이다. 게다가 지젝은 오페라광이긴 하지만 결코 ‘시네필’은 아니다. 그 점이 시네필 평론가로선 불만스러울 수 있겠지만" ("실재계-상징계-상상계" | 로쟈의 지젝, <로쟈의 저공비행>)


난 이 면에서 지젝에게 거의 완전히 동의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결코 시네필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영화에 가능성이 있다는 있다는 말엔 동의하더라도 영화만이 그것을 담지하는지, 혹은 그중 최고의 형태로 구현돼 있는 것이 영화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진 좀 회의적이다.


“천만에요. 제가 분석하거나 해석하는 영화들의 3분의 1도 보지 않았을 겁니다. 예컨대 저는 로셀리니의 작품을 한 편도 보지 않았으며, 영화관에 가는 것도 그리 즐겨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극장에 갈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정확하겠네요. 영화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중요한 영화 텍스트에 대한 대부분의 분석이 책의 형태로 이미 나와 있기 때문에 연구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습니다.” (지젝의 말, 위의 출처에서 재인용)



그냥 휴일 오후에 할일 없이 끼적여봤다.

아래 링크가 이 생각의 발단이 된 주소이고, 지젝을 모르더라도 읽어볼 만한 내용이니 심심한 사람에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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